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걸 보고 바로 극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박찬욱 감독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병헌부터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 염혜란까지 배우 라인업을 보는 순간 '이건 꼭 봐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98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대한민국 출품작으로까지 선정된 영화.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만들어낸 블랙 코미디의 정수
저는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을 거의 다 챙겨봤는데,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유독 유머러스한 톤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이나 '박쥐'처럼 그의 다른 작품들도 잠재된 유머가 있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대놓고 관객을 웃기려 드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웃다가도 뒷목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 만수가 겪는 해고와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부조리함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태양 제지에서 해고된 만수는 다른 제지 회사인 파피루스에 취업하려다 실패하고, 자신보다 면접 점수가 높았던 경쟁자들을 없애야만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집니다. 가짜 회사 '레드 페퍼'를 만들어 사람들을 유인하고 살해하는 과정은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탁월했습니다. 코미디와 비극을 오가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그의 연기력은, 관객이 만수라는 인물에게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경악하게 만듭니다. 손예진은 남편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아내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이성민과 염혜란의 콤비는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상을 남겼습니다. 박희순과 차승원 역시 짧은 등장임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해고 노동자의 비극을 그린 사회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 건 해고라는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제 주변에도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겪는 고통을 가까이서 봤기에 만수의 절박함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노동 영화이자 사회 드라마로서, 대량 해고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룹니다.
원작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도끼'이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를 한국 사회의 맥락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라는 제로섬적 시각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만수는 세상을 자리가 하나뿐인 상황으로 인식하고, 다른 세 명을 경쟁자이자 적으로 봅니다. 현실에서는 다른 직종으로 전업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이런 가능성을 모두 배제한 살벌한 설정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건 박찬욱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과의 비교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해고 노동자가 고용주를 상대로 싸우지만, '어쩔 수가 없다'에서는 고용주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해고 노동자들끼리의 경쟁과 범죄가 중심이 됩니다. 이 점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착점의 경쟁, 그리고 성공해도 처연한 감정을 안기는 구조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만수가 첫 번째 희생자 법모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부부 관계를 투영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25년 경력의 제지 회사 직원, 특수지 생산, 수상 이력, 해고로 인한 부부 관계 위기 등 두 사람의 공통점이 너무 많아서 만수는 법모를 죽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일부를 죽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두 번째 희생자 시조는 딸과의 좋은 관계를 보여주는데, 이는 만수와 딸의 어색한 관계와 대비되며 또 다른 자기 투영의 층위를 만들어냅니다.
나무와 집, 그리고 3대에 걸친 비극의 구조
영화를 다시 곱씹어보니 나무라는 은유가 계속 반복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지업계는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고 사람을 고용합니다. 만수의 콧수염은 나무에 대한 은유와 연결되어, 취업 상태일 때는 기르고 해고 상태에서는 깎습니다. 벌목과 해고를 비유하는 섬뜩한 설정입니다.
만수는 아버지의 집인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돼지 농장 주인이었는데, 만수가 9살 때 구제역으로 2만 마리의 돼지를 매립한 비극적 사건을 겪었습니다.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는 트라우마를 겪다 자살했고, 만수는 그 집을 떠나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성공한 후 만수는 아버지의 집을 다시 사서 창고를 없애고 온실을 만들어 과거를 복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낙원이었을까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가져온 북한제 권총이 만수의 살인 도구가 되는 장면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만수의 아들이 핸드폰 대리점을 터는 장면과 만수가 시체를 묻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여 3대에 걸친 범죄의 연결고리를 보여줍니다. 할아버지의 베트남전 참전과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가 결합되면서, 현재의 번영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드러냅니다.
나무 밑에 묻힌 것들은 아들의 훔친 핸드폰, 매립된 돼지, 만수가 죽인 시신입니다. 3대에 이르는 비밀들이 나무 밑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제지업계가 주장하는 '무한 재생' 사이클은, 결국 돼지 매립과 대량 해고가 같은 과정임을 보여주는 아이러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이 장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완전 범죄에 성공한 만수는 표면적으로는 해피 엔딩을 맞이합니다. 집을 팔지 않고 유지하고, 가족들과 재회하며 첫 출근을 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범죄를 의심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며, 만수는 9년간 지켜온 금주를 깨뜨립니다. 가족은 단란해 보이지만 만수는 감정적으로 배제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만수가 얻은 새 직장에서 '다른 사람을 해고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있다'고 답했다는 점입니다. 초반의 태도와 완전히 달라진 전락한 상태입니다. 새 직장의 AI 소등 시스템은 만수 또한 미래에 해고될 것임을 시각적으로 암시합니다. 결국 만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은 핑계처럼, 변명처럼 들립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많은 비극이 바로 이 변명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작품들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쥐'의 현상현,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 그리고 이 영화의 만수 모두 '어쩔 수가 없다'고 포기하며 비극으로 빠져드는 인물들입니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배우들의 호흡과 감독 특유의 아이러니한 연출이 어우러져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다소 무거운 서사임에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