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 '초능력자'는 강동원과 고수라는 두 배우의 대결 구도만으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개봉 당시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는 초능력이라는 소재에 끌려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투명인간이나 순간이동처럼 현실에서 불가능한 능력을 스크린으로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한 경험입니다.
강동원 고수 대결, 눈빛으로 지배하는 초인 vs 통하지 않는 남자
영화는 어린 시절 눈을 가린 채 살던 초인(강동원)이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하고 능력을 각성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눈빛만으로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지만, 엄마마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배신감에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가게 됩니다. 반면 규남(고수)은 폐차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교통사고를 당해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인물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낀 건 바로 이 대립 구도였습니다. 절대적 능력을 가진 자와, 그 능력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의 만남이라는 설정 자체가 긴장감을 만들어냈거든요.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규남이 새로 취직한 전당포 '유토피아'에서 벌어집니다. 초인은 사람들을 조종해 돈을 훔치려 하지만 규남에게만은 능력이 통하지 않죠. 초인이 당황하는 모습은 그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초인의 전기 충격으로 전당포 사장이 목숨을 잃으면서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강동원의 차갑고 고독한 눈빛 연기와 고수의 끈질긴 추적자 이미지는 서로의 존재감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강동원이 사람들을 조종할 때 보여주는 무표정한 얼굴이 오히려 더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형 히어로 영화의 시도, 순수한 마음에는 통하지 않는 능력
영화는 초인의 능력에 흥미로운 설정을 하나 추가합니다. 바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조종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규남과 아기가 대표적인 예시죠. 제 경험상 일상에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초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런 능력조차도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어쩌면 현실에서도 순수함이나 진심 같은 건 어떤 힘으로도 조종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인은 경찰서에서 풀려난 후 직원들을 조종해 혼란을 만들고 달아나고, 규남을 막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심지어 아기를 인질로 삼아 협박하는 장면에서는 초인의 냉혹함이 극에 달합니다. 규남은 아기를 구하려다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지지만, 놀라운 회복력으로 다시 일어나 초인을 쫓습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 영화가 히어로 장르를 어떻게 다루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처럼 화려한 CG나 대규모 액션 대신, 두 인물의 신체적 대결과 심리적 긴장에 집중했거든요.
초인은 대담하게 은행을 털고 경찰들을 지하로 유인하며 위기를 넘기지만, 점점 눈이 멀어가기 시작합니다.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부작용이었죠. 규남 일행은 초인에 대항할 무기를 만들지만 초인은 먼저 찾아와 규남의 동생들을 조종해 공격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방패로 삼는 초인의 전략 앞에서 규남은 번번이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건물로 숨어든 초인은 영숙을 인질로 삼고, 규남과 함께 아래로 떨어지면서 대결은 끝을 맺습니다.
서사 한계를 넘지 못한 아쉬움, 그래도 의미 있는 시도
영화 '초능력자'는 강동원과 고수라는 두 배우의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강동원은 타인을 지배하는 고독한 초인을, 고수는 그 능력이 통하지 않는 끈질긴 추격자를 설득력 있게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서사가 단순한 추격과 대립에만 치중한 점은 분명한 한계였습니다. 초인이 왜 그렇게 냉혹해졌는지, 규남의 특별한 회복력이 어디서 온 건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부족했거든요.
일반적으로 초능력 소재 영화는 한국에서 큰 흥행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한계 속에서도 나름의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SF 요소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배우들의 비주얼과 연기 대결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도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런 상상을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시도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인물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봤다면 단순한 액션을 넘어선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