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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 유관순 이야기 (옥중 저항, 여성 독립운동가, 서대문형무소)

by leedo112 2026. 3. 1.

영화 항거
영화 항거(2019)

 

3.1절이 다가오면 저는 늘 같은 고민을 합니다. 유관순 열사를 떠올릴 때 만세운동 장면만 머릿속에 맴도는데, 정작 그 이후의 시간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2019년 개봉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감옥 안에서 벌어진 1년간의 이야기가 이렇게 처절하고 또 강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 서대문형무소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신념과, 그 신념을 함께 나눈 여성들의 연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서대문형무소 8번 방,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연대

 

1919년 유관순이 수인번호 371번으로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번 방에 수감되었을 때, 그곳은 이미 누울 자리조차 없을 만큼 죄수들로 빼곡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옥중(獄中) 환경입니다. 옥중이란 감옥 안을 의미하는데, 당시 조선인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된 공간은 비위생적이고 협소하여 기본적인 생존조차 위협받는 수준이었습니다(출처: 국가보훈처).

영화 속에서 유관순은 같은 방에 수감된 기생 출신 김향화, 다방 종업원 이옥이, 임산부 임명애 등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과 만나게 됩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깊이 공감했던 부분은, 이들이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연대의식이었습니다. 특히 임명애가 옥중 출산을 하고 돌아왔을 때, 모두가 자기 옷에서 솜을 조금씩 떼어내 베냇저고리를 만들어주는 장면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선 생존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영화는 이들이 함께 아리랑을 부르고, 누군가 다가오면 개구리처럼 일제히 조용해지는 모습을 통해 집단 저항의 초기 형태를 보여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저항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연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독립운동사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게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영화가 그들의 존재를 가시화한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출처: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옥중 만세운동과 가혹한 탄압

 

1920년 3.1운동 1주년을 앞두고 유관순은 세탁장 노역을 자청합니다. 여기서 노역(勞役)이란 죄수에게 부과되는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데, 당시 형무소에서는 이를 통해 죄수들을 통제하고 감시했습니다. 유관순이 힘든 노역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감방 밖에서 날짜를 파악하고 다른 죄수들과 접촉할 기회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3월 1일, 유관순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암송하며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8번 방에서 시작해 여옥사 전체로, 다시 남옥사로, 마침내 형무소 밖 거리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항이 전염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용기가 주변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다시 더 큰 파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목격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유관순은 주동자로 지목되어 손톱 밑에 꼬챙이를 밀어넣는 고문과 벽관(壁棺) 고문을 받습니다. 벽관이란 사람이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가두는 고문 방식으로, 장시간 갇혀 있으면 혈액순환 장애와 심각한 신체 손상을 초래합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 이후 만신창이가 된 유관순의 모습을 통해 고문의 잔혹함을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주요 고문 방식과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매질과 구타로 인한 안면 부종 및 전신 타박상
  • 손톱 밑 꼬챙이 삽입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과 감염 위험
  • 벽관 고문으로 인한 혈액순환 장애 및 신체 기능 저하
  • 반복적인 폭행으로 인한 내부 장기 손상

제 생각엔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유관순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고, 그 결과 자궁 파열과 방광 손상이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습니다.

 

18세 소녀가 남긴 질문, "그럼 누가 합니까"

 

영화 후반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유관순에게 한 남자 죄수가 묻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이때 유관순이 남긴 대답은 단 한 마디였습니다. "그럼 누가 합니까." 저는 이 장면에서 비로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저항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고,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1920년 9월 28일, 유관순은 출소를 이틀 앞두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18세였습니다. 형기 감면(減免)을 받았음에도 끝내 석방되지 못한 이유는 지속적인 고문으로 인한 신체 손상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감면이란 형벌의 일부를 줄이거나 면제해주는 법적 조치를 의미하는데, 1920년 영친왕 혼인 특사로 많은 수형자들이 형기를 절반씩 줄여받았습니다.

영화는 유관순의 시신이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1939년 비행장 건설로 유실되었다는 자막과 함께, 그녀를 고문한 조선인 간수 정춘영(일본명 니시다)이 1949년 체포되었지만 반민특위 해산으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담담히 전합니다. 저는 이 마지막 자막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줬습니다. 역사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지고, 책임지지 않으면 반복된다는 교훈 때문입니다.

고아성의 연기는 18세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강인함을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본 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유관순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두려움보다 더 큰 신념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영화 '항거'는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유관순의 일대기나 3.1운동 전개 과정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선택은 오히려 효과적이었습니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그녀와 동료들이 보여준 연대와 저항은 더 강렬한 울림을 주었고,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현재에 이어가는 일임을 다시금 깨닫게 했습니다. 3.1절인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며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그럼 누가 합니까'라는 질문을 함께 고민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95%AD%EA%B1%B0:%20%EC%9C%A0%EA%B4%80%EC%88%9C%20%EC%9D%B4%EC%95%BC%EA%B8%B0
https://www.mpva.go.kr
https://www.kwim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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